공을 던지는 또 하나의 예술, ‘스핀 미러링’
투수들이 타자보다 우위를 점하기 위해 사용할 수 있는 전략은 정말 많습니다. 구속 변화, 시야 높이 조절, 구종 조합(시퀀싱), 그리고 스핀 회전수 조절 등은 이미 널리 알려진 방법들입니다. 속도 변화를 주면 타자의 타이밍을 빼앗을 수 있고, 시야 높이를 바꾸면 타자의 시각적 초점을 넓게 만들어 혼란을 줄 수 있습니다. 상황에 따라 구종 선택을 바꾸면 예측하기 어려워지고, 스핀 레이트를 바꾸면 구질의 움직임 자체를 다르게 보이게 만들 수 있습니다.
하지만 이 외에도 투수들이 숨겨둔 미세한 ‘속임수’가 존재합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피치 혹은 스핀 미러링(pitch/spin mirroring)이라는 기술입니다. Joe Schwarz가 The Athletic에 기고한 글에서 소개된 이 개념은 Eno Sarris의 글에서 좀 더 깊이 있게 다뤄졌으며, 올바른 구종 특성과 결합하면 매우 강력한 무기가 될 수 있습니다.
타자의 눈을 속이는 ‘스핀 미러링’
어떤 타자들은 공의 회전을 보고 어떤 구종이 올지 파악할 수 있다고 말합니다. 수천 분의 일초 단위로 벌어지는 타격 결정 과정에서 이 능력은 엄청난 장점이 될 수 있습니다. 회전수가 분당 2000회를 넘는 상황에서 인간의 눈이 그걸 포착할 수 있을까요? 어쩌면 가능할지도 모릅니다. Preston Wilson은 타자가 공에서 보이는 흰색과 빨간색의 비율—즉, 실밥의 색—을 통해 구종을 감지한다고 말합니다. 흰색이 많이 보이면 포심이나 커브처럼 빠르고 회전이 많은 공일 가능성이 높고, 빨간색이 두드러지면 체인지업일 수 있다는 거죠.
그렇다면 투수는 이 시각 정보를 역이용할 수도 있습니다. 특히 포심과 커브 조합은 두 공 모두 회전이 많기 때문에 스핀 미러링 효과를 활용하기 좋습니다. 공의 회전 흐림 효과(blur)가 거의 흰색이라면 회전 방향을 읽는 건 더더욱 어려워지죠.
하지만 단순히 시각적 혼란만이 미러링의 장점은 아닙니다. 서로 반대 방향으로 회전하는 두 공을 같은 궤적으로 던지면, 타자는 하나의 공이라 착각했다가 전혀 다른 궤적을 마주하게 됩니다. 커밋 포인트(스윙 결정을 내리는 지점) 이후 두 공이 크게 벌어지면 어정쩡한 스윙이 유도되거나 약한 타구를 유도할 수 있습니다.
마그누스 효과
이 개념을 제대로 이해하려면, 마그누스 효과(Magnus Force)라는 물리 개념을 알아야 합니다. 포심 패스트볼은 백스핀이 걸리며 중력에 반하는 방향으로 힘을 받습니다. 물론 중력이 결국 이기지만, 공이 더 오래 뜬 것처럼 보이는 착시 효과를 유도하죠. 반대로 커브볼은 탑스핀이 걸려 마그누스 힘이 중력과 같은 방향으로 작용해 공이 더 빨리 가라앉습니다.
이 특성을 활용해, 포심(백스핀)과 커브(탑스핀)를 함께 사용하는 것이 이상적입니다. 이 두 구종은 180도 회전 방향 차이를 만들며, 타자 입장에서는 두 공이 같은 궤적에서 시작했다가 전혀 다른 위치로 향해 스윙 타이밍을 맞추기 매우 어렵게 됩니다.
실전 예시: 커브와 포심의 진짜 미러링
스트라스버그의 예를 보죠. 그는 포심과 커브를 연속으로 던졌는데, 공 두 개는 한동안 같은 궤적을 유지하다가 커밋 포인트에서 급격히 갈라집니다. 그 결과 Corey Seager는 커브에 속아 헛스윙을 했죠. 그 순간까지 그는 또 하나의 포심이 날아온다고 생각했을 겁니다.
물론 슬라이더나 체인지업처럼 자이로 회전이 많이 들어가는 구종은 포심과의 미러링이 어렵습니다. 회전축의 차이가 90도, 심지어 45도에 그치는 경우도 많죠. 이런 경우는 주로 좌우 타자 상대 전술로 활용되며, 좌완 투수가 우타자에게 던지는 슬라이더가 그런 예입니다. 이런 대조적인 회전축도 나름의 효과는 있지만, 모든 타자에게 효과적인 조합은 포심-커브 조합입니다.
슬라이더와 체인지업의 스핀 축을 거의 180도에 가깝게 대비시키며 설계한 좋은 예시가 있습니다. 스트라이크든 볼이든 상관없이, 로모의 슬라이더(2:45)와 체인지업(8:30)은 엄청난 무브먼트를 보여줍니다.
실제 수치로 본 스핀 미러링의 힘
2019년 기준, 80이닝 이상 던졌고 슬라이더 또는 커브를 20% 이상 사용한 투수들 중 상위 5명을 골라 포심과의 스핀 방향 차이(DIFF)를 정리했습니다.
포심-슬라이더 조합:
투수 | 팀 | 슬라이더 사용률 | 슬라이더 가치 | 슬라이더 방향 | 포심 방향 | 차이 |
---|---|---|---|---|---|---|
슈어저 | 내셔널스 | 20.4% | 3.99 | 99 | 229 | 130도 |
헨드릭스 | 애슬레틱스 | 21.3% | 3.43 | 148 | 199 | 51도 |
벌랜더 | 애스트로스 | 28.7% | 3.38 | 139 | 208 | 69도 |
몬타스 | 애슬레틱스 | 24.6% | 2.81 | 121 | 231 | 110도 |
마에다 | 다저스 | 31.5% | 2.50 | 139 | 209 | 70도 |
예시를 보기 전에 먼저 짚고 넘어가야 할 점이 있습니다. 저는 평균적인 회전 방향과 공의 위치를 반영하는 투구 조합을 선정하려 했으며, 스트라이크 판정을 받았거나 헛스윙이 유도된 공들만을 골랐습니다.
가장 먼저, 회전축 차이가 가장 작았던 헨드릭스의 사례를 살펴보겠습니다.
사실 그렇게 나쁘지 않습니다. 두 공의 궤적이 꽤 촘촘하고, 터널링도 잘 이루어졌습니다. 하지만 데이비스보다 예리한 눈을 가진 타자라면 두 공의 차이를 눈치챘을지도 모릅니다. 데이비스가 슬라이더를 흘려보내고 포심에 스윙을 걸었다면 결과는 전혀 달랐을 수도 있죠.
다음은 슈어저의 포심과 슬라이더 예시입니다. 회전축 차이가 가장 크고, 180도 미러링에 가장 근접한 조합이죠.
헨드릭스의 사례처럼 두 공은 처음에는 거의 같은 궤적을 그리지만, 커밋 포인트를 지나면 큰 차이를 보이며 갈라집니다. 이 지점부터는 두 공의 회전축이 서로 반작용하듯 완전히 다른 움직임을 만들어냅니다.
포심-커브 조합:
투수 | 팀 | 커브 사용률 | 커브 가치 | 커브 방향 | 포심 방향 | 차이 |
---|---|---|---|---|---|---|
마르케스 | 로키스 | 22.2% | 2.42 | 32 | 220 | 188도 |
그레이 | 레즈 | 25.6% | 2.25 | 49 | 190 | 141도 |
스트라스버그 | 내셔널스 | 30.6% | 2.24 | 53 | 226 | 173도 |
모튼 | 레이스 | 37.3% | 2.12 | 58 | 241 | 183도 |
놀라 | 필리스 | 35.2% | 1.30 | 49 | 233 | 184도 |
커브볼 투수들은 확실히 포심과 거의 완벽에 가까운 180도 회전차를 구현하고 있습니다. 우연이 아닙니다. 커브의 효율성과 스핀 미러링 효과는 매우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습니다.
먼저 모튼부터 살펴보겠습니다. 그의 커브볼과 포심 패스트볼은 평균적으로 183도 회전축 차이를 보였습니다.
이 클로즈업 영상에서는 두 구종의 회전 방향이 얼마나 정밀하게 서로를 미러링하고 있는지 확인할 수 있습니다.
그리고 이번엔 놀라입니다. 그는 이상적인 회전축 차이에서 평균 4도 정도 벗어난 수치를 기록했는데, 너클 커브와 포심을 짝지어 사용합니다.
이 영상 각도는 두 구종의 실제 미러링을 왜곡시킬 수 있다는 점을 염두에 두셔야 하지만, 이 조합이 만들어내는 분리 효과는 충분히 확인하실 수 있습니다.
결론: 더 많은 투수들이 주목해야 할 기술
많은 투수들이 무의식적으로 스핀 미러링을 하고 있을지 모르지만, 이 조합을 의도적으로 설계한다면 더 큰 효과를 볼 수 있습니다. 특히 커브볼은 포심과의 회전 대비가 극대화되기 때문에, 포심을 구사하는 대부분의 투수에게 가장 이상적인 조합입니다.
코치와 투수 트레이너들은 투수의 포심과 커브의 회전축 차이를 정밀하게 분석하고, 이를 최적화할 방법을 고민할 필요가 있습니다. 이 작은 차이가 헛스윙 하나를, 혹은 결정적인 아웃카운트를 만들어낼 수 있습니다.
출처:
Fangraphs, Taking a Look at Spin Mirroring (작성자: Michael Augustine)
원문 링크: https://blogs.fangraphs.com/taking-a-look-at-spin-mirroring/
답글 남기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