투수

스핀 닥터: 가장 다재다능한 투수 유형을 살펴보다

혹시 이런 상황을 겪어본 적 있나요? 하고 싶은 건 정말 많은데, 선택할 수 있는 시간이나 기회는 한정되어 있을 때 말이에요. 예를 들어 음악 페스티벌에서 보고 싶은 아티스트가 여러 명인데, 그 중 두 팀이 같은 시간에 다른 무대에서 공연을 한다면요.

야구 쪽으로 비유하자면, 비디오 게임에서 올스탯을 찍은 투수 선수를 만든 상황일 수도 있겠죠. 강력한 포심 패스트볼에, 화면 전체를 가로지르는 각도로 휘어지는 90마일 스위퍼, 묵직하게 떨어지는 커브, 여기에 병살타 유도를 위한 싱커까지. 정말 치기 어려운 투수죠.

물론 이런 투수는 현실이 아닌 게임 속에서나 존재합니다. 하지만 실제 야구에서 이와 가장 가까운 존재가 바로 ‘스핀 닥터(spin doctor)’라는 투수 유형입니다. 스핀 닥터는 독특한 점이 있는데, 말 그대로 ‘모두 가질 수 있는’ 투수입니다.

대부분의 투수들은 선천적으로 가능한 무브먼트나 구종의 범위가 정해져 있는 편이에요. 예를 들어, 어떤 투수가 캠프에 다녀온 뒤 완전히 새로운 무기를 장착해 돌아왔다고 해도, 갑자기 새로운 능력이 생긴 건 아닙니다. 원래부터 할 수 있었지만 몰랐던 걸, 그제야 제대로 배운 것뿐이죠.

모든 투수가 똑같을 수는 없지만, 일정한 틀에서 약간의 변형을 거쳐 만들어진다는 점에서는 공통점이 있습니다. 이 ‘틀’이란 건 주로 선천적인 신체 구조나 움직임 습관 같은 것들로 정해져요. 그리고 그 중에서도 어떤 구종을 던질 수 있는지를 결정짓는 가장 중요한 요소는 바로 프로네이션(pronation) 성향과 수피네이션(supination) 성향입니다.

프로네이터와 수피네이터의 일반적인 특징

‘프로네이션(pronation)’과 ‘수피네이션(supination)’이라는 용어가 낯선 분들을 위해 간단한 동작 실험부터 해볼게요. 양팔을 편하게 옆으로 내려뜨린 다음, 팔꿈치를 구부려 손바닥이 서로 마주보도록 앞으로 들어올려 주세요. 이제 팔뚝을 회전시켜 양 엄지가 서로 반대 방향으로 기울어지게 하고, 손바닥이 천장을 향하게 만들어보세요. 이것이 바로 수피네이션, 즉 바깥쪽 회전입니다.
반대로, 팔을 비틀어 양 엄지가 서로 가까워지고 손바닥이 아래로 향하게 만드는 동작이 프로네이션, 즉 안쪽 회전입니다.

모든 사람은 이러한 동작을 할 때 각자 고유한 움직임 성향(bias)을 가지고 있습니다. 어떤 동작은 더 쉽게 하고, 어떤 동작은 제한이 있죠. 투수의 경우, 이런 성향이 어떤 구종을 잘 던질 수 있을지를 결정짓는 핵심 요소가 됩니다.

예를 들어, 프로네이션에 더 적합한 투수들은 비슷한 스타일의 레퍼토리를 가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이 경향을 가장 먼저 명확하게 설명한 사람 중 한 명이 바로 Tread Athletics의 타일러 좀브로(Tyler Zombro)인데요, 그는 이를 ‘프로네이터의 삼각형(Pronator’s Triangle)’이라고 불렀습니다.

프로네이터의 구종 구성은 대체로 다음과 같은 삼각형을 이룹니다:

  • 포심 패스트볼
  • 체인지업 또는 스플리터
  • 자이로 슬라이더

물론 선수마다 약간의 차이는 있습니다. 어떤 투수는 체인지업을 더 날카롭게 던지고, 어떤 투수는 스파이크 그립을 통해 자이로 슬라이더에 더 강한 구위를 실을 수 있습니다. (사실 이쯤 되면 구종별 그립에 대해 하루 종일 이야기할 수도 있을 정도죠.)

하지만 대부분의 프로네이터들이 공통적으로 가지지 못한 무기가 있습니다. 바로 힘과 움직임을 동시에 갖춘 브레이킹 볼입니다. 일부 예외적으로, 폴 스킨스 처럼 엄청난 구속을 가진 투수들은 어느 정도 커버할 수 있죠.

흥미로운 예로, 브랜든 팟은 스킨스 처럼 강속구를 던지지는 않지만, 거의 동일한 성능의 스위퍼를 던집니다:

구종구속(MPH)수직 무브(IVB)수평 무브(HB)릴리스 포인트 (수직/수평)익스텐션암 앵글
스킨스의 스위퍼84.35.8”11.6”5.46’ / -2.39’6.5’20.1°
팟의 스위퍼84.35.6”11.6”5.56’ / -1.94’6.5’26.3°

이 데이터를 보면, 프로네이터가 수피네이터의 일부 능력을 따라잡기 위해 얼마나 많은 보완이 필요한지를 알 수 있습니다.

게다가 수피네이터가 가지는 또 다른 장점은 심-시프트 웨이크(Seam-Shifted Wake) 효과를 잘 활용할 수 있다는 점입니다. 이는 주로 싱커나 체인지업에서 나타나는데, 공의 회전 방향과 무브먼트가 일치하지 않도록 만드는 현상입니다.

물론, 수피네이터가 무조건 유리한 건 아닙니다. 평균적인 수피네이터는 다양한 구종을 만들고 조합하는 능력에서 이점이 있지만, 프로네이터처럼 뛰어난 포심 패스트볼을 만들기에는 한계가 있습니다.
포심 패스트볼에서 중요한 액티브 스핀 비율을 충분히 끌어올리기 어렵기 때문인데요, 이로 인해 회전이 실제 무브먼트로 전이되는 비율이 낮아지는 경향이 있습니다.

스핀 닥터가 특별한 이유

자, 이제 본격적으로 ‘스핀 닥터’의 세계로 들어가 봅시다. 이 유형의 투수들은 다양한 형태로 존재하지만, 공통된 강점을 하나 가지고 있습니다. 바로 프로네이터와 수피네이터의 장점을 모두 활용할 수 있다는 것이죠.

예를 들어볼까요? 마이클 킹을 생각해 봅시다. 그는 포심 패스트볼, 체인지업, 자이로 슬라이더로 구성된 전형적인 ‘프로네이터 삼각형’을 갖춘 투수입니다. 하지만 킹 하면 떠오르는 건 그 삼각형보다는, 아름다운 스위퍼와 묵직한 싱커를 활용한 수평 무브먼트 조합, 그러니까 ‘동서형 레퍼토리’일 겁니다. 그게 바로 스핀 닥터의 진면목이에요. 킹은 괜찮은 포심 패스트볼을 던지면서도, 패스트볼보다 시속 10마일 느린 강력한 스위퍼도 가지고 있죠. 이런 조합은 매우 드물고, 그를 특별하게 만드는 핵심 요소입니다.

그렇다면 그는 어떻게 이걸 가능하게 만들었을까요? 이 유형의 투수들에게서 공통적으로 나타나는 특징인데, 킹은 2375RPM의 고회전 포심을 던지면서도 스핀 효율은 84%에 그칩니다. 보통 프로네이터 중에서 무브먼트가 큰 패스트볼을 던지는 투수들은 90% 이상의 스핀 효율을 보여주는데, 킹은 총 회전량 자체로 부족한 효율을 보완합니다. 여기에 암 슬롯과 비교했을 때 형성되는 공의 궤적(shape)이 좋아서 포심을 또 하나의 유효한 무기로 만들 수 있죠. 이런 점을 보면, 스핀 닥터를 찾을 때는 총 회전량으로 괜찮은 포심 궤적을 만들면서도, 무브먼트 좋고 구속 차가 적은 브레이킹 볼을 가진 투수를 주목해야 한다는 뜻이 됩니다.

가장 극단적인 사례는 마이애미 말린스의 신인 레이크 바차르입니다. 그는 거의 2700RPM의 포심을 던지는데 스핀 효율도 88%로, 무브먼트가 탁월합니다. 그러면서도 시속 80마일 후반대의 스위퍼까지 던지죠.

하지만 모든 스핀 닥터가 킹처럼 생긴 건 아닙니다. 같은 유형이더라도 브라이언 우는 포심 하나로 압도하는 스타일입니다. 그는 낮은 릴리스 포인트에서 투구하여, 공이 타자에게 각을 만들어 들어가는 것이 매우 까다롭습니다.

또 다른 예로, 제가 요즘 가장 좋아하는 투수 중 한 명인 세인트루이스 카디널스의 불펜 투수 카일 리히도 있습니다. 그는 킹이나 우보다 높은 슬롯에서 투구하고, 바차르처럼 싱커는 거의 사용하지 않습니다. 다만, 바차르에 비해 패스트볼은 그리 강하지 않습니다. 시속 94.8마일, 수직 무브 17.1인치, 수평 무브 3.2인치, 릴리스 높이 5.9피트에 엘리트 수준의 익스텐션—충분히 괜찮은 ‘컷-라이드’ 형태지만 그의 주 무기는 아니에요. 리히를 특별하게 만드는 건 그의 압도적인 브레이킹 볼 조합입니다.

그는 자이로 슬라이더를 무려 시속 90.2마일로 던지는데, IVB 4.9인치, HB 5.1인치. 이 정도로 수평 무브먼트가 강한 슬라이더를 이보다 더 빠르게 던진 선수는 올 시즌 한 명도 없었습니다. 놀랍게도 이건 리히의 두 번째 슬라이더일 뿐입니다. 그의 스위퍼는 평균 시속 86.2마일에 무려 14.9인치의 수평 무브를 자랑하죠. 지금까지 올 시즌에서 이보다 빠르고 더 많이 움직이는 스위퍼를 던진 투수는 단 한 명도 없습니다. 혹시 오리온 커커링을 떠올리셨다면, 그는 86.5마일에 14.3인치를 기록 중입니다.

대부분의 사람이라면, 이렇게 빠르고 많이 움직이는 브레이킹 볼을 던지는 투수는 기본적으로 구속이 뛰어날 것이라고 예상할 겁니다. 하지만 리히는 그렇지 않습니다. 시즌 동안 패스트볼을 50개 이상 던진 투수 중, 그의 패스트볼 구속은 전체 440명 중 159위에 불과합니다.

여기서 끝이 아닙니다. 그의 체인지업과 커브도 수준급입니다. 체인지업은 스핀 효율이 낮고 심 효과(seam effect)가 뛰어나며, 수피네이터에게 더 적합한 그립을 사용하고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커브는 시속 82.7마일, 수직 무브 -13.7인치, 수평 무브 9.7인치로, 수평 무브가 약간 줄어든다면 더 완벽하겠지만, 스핀 미러링과 타자 속임수 효과는 대단합니다.

구종회전수(RPM)액티브 스핀 비율회전 방향릴리스 포인트 (수직/수평)암 앵글
리히의 포심235585%12:465.88’ / -2.16’46.0°
리히의 커브239781%7:215.87’ / -2.22’47.7°

이 모든 요소들이 스핀 닥터를 특별하게 만드는 이유입니다. 이들은 ‘싱커 아니면 구린 포심’이라는 한계에 갇히지 않고, 광범위하고 수준 높은 레퍼토리를 구축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어요. 킹과 우처럼 포심과 싱커를 모두 활용하는 경우도 많고요.

사실 저도 킹과 우에 대해 이전에 글을 쓰며 이런 특성을 언급했지만, 그때는 이렇게 많은 유사 유형의 투수들이 존재하는 줄 몰랐습니다. 잭 휠러는 낮은 슬롯에서 스핀 효율이 80% 중반대인 훌륭한 포심을 바탕으로 비슷한 틀을 따르고 있습니다. 보스턴의 루키 리처드 피츠 역시 부상 전까지 매우 인상적이었고, 사실 이 글의 핵심 인물 중 하나가 될 예정이었죠. 높은 슬롯의 수피네이터로서 포심을 주무기로 삼았거든요.

잭스, 부비치, 라스무센, 파블로, 캐스패리우스, 스튜어트, 워렌, 메이—이런 이름들이 점점 더 많이 등장하고 있으며, 앞으로 리그를 주도할 존재들이 될 것입니다.

이 글에서 가져가야 할 점 (그리고 가져가지 말아야 할 점)

구종 조합의 완성도 다음으로 투수에게 가장 중요한 능력은 다재다능함(versatility)입니다. 만약 두 개의 압도적인 구종만으로 타자를 지워버릴 수 있는 전성기의 제이콥 디그롬이 아니라면, 다양한 상황에 대응할 수 있는 옵션이 필요하죠.
모든 상황에 맞는 ‘도구’를 가진 투수는 극히 드뭅니다. 물론 모든 구종을 던지는 건 쉬운 일이 아닙니다. 때론 구종 수를 줄여야 제구를 더 안정적으로 가져갈 수 있기도 하니까요 (기침, 브라이스 밀러).
여기서 말하고 싶은 건, 누구나 가능한 구종을 전부 던지라는 얘기가 아니라, 그 선택지들을 가져갈 수 있는 능력 자체가 큰 재능이라는 겁니다.

또 하나 기억해야 할 건, 앞서 언급한 스핀 닥터 유형의 투수들은 대부분 포심 패스트볼의 스핀 효율이 80~89% 사이에 위치해 있지만, 이게 절대적인 기준은 아니라는 점입니다. 이 범위에 들어 있는 모든 투수가 스핀 닥터는 아니고, 반대로 이 범위 밖에 있어도 이 유형의 특징을 가진 투수도 있습니다.
예를 들어, 파블로 로페즈와 스튜어트는 스핀 효율이 70%대 중반에 불과하지만 위에서 소개한 투수들과 유사한 구종 구성과 능력을 보여주고 있죠.

진짜 중요한 건, 각 투수를 개별적으로 분석해야 한다는 것입니다.
만약 그 투수가 효과적인 포심 패스트볼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나머지 구종에서 서피네이터 특성을 일부 보여준다면, 아마도 다양한 구종을 개발하고 활용할 잠재력이 있을 가능성이 높습니다.

간혹 아주 드물게, 순수한 프로네이터임에도 불구하고 엘리트급 구속 없이 그립 변화만으로 이 능력을 흉내 내는 투수가 나타나기도 합니다. 이런 투수는 회전 효율과 무브먼트가 뛰어난 포심과, 패스트볼에 비해 상대적으로 빠른 슬라이더나 커브를 함께 던지며 이를 구현해냅니다.
이런 유형은 사전에 예측하기가 매우 어렵고, 실제 경기에서 그 능력을 드러내기 전까지는 거의 보이지 않습니다.
만약 어떤 투수가 더 다양한 구종을 익히며 다재다능한 투수로 발전할 수 있을지를 찾고 있다면, 이런 접근은 최적의 탐색 방식은 아닐 수 있습니다.

본론으로 돌아가서, 이런 유형의 투수가 무조건 완벽한 건 아닙니다.
‘많이 할 수 있다’는 것이 ‘그 모든 게 다 쓸모 있다’는 뜻은 아니거든요.
하지만 그들이 위대한 이유는, 이론적으로 그런 것들을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지녔다는 점입니다.
이건 모든 투수에게 주어지는 재능이 아니에요. 그렇다고 해서 이런 투수가 무조건 성공한다는 보장은 없지만, 그들의 ‘플로어’과 ‘실링’을 모두 높여주는 요소가 됩니다.
단지 그 자체로 뛰어난 건 아니지만, 다른 투수들이 가질 수 없는 방식으로 성장할 여지를 제공한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습니다.
결국 어떤 선수든 그렇듯, 이 유형의 투수에 대해서도 기대치는 현실적으로 설정하는 게 중요합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유형의 투수는 야구적 통찰력이 높은 팀들이 투수 자원을 발굴하는 데 있어 상당히 유용한 기준점이 될 수 있습니다.
이 특성이 주는 잠재력을 조기에 식별하는 능력은, 현역 선수단 구성이나 유망주 수집 과정 모두에서 매우 효과적인 전략이 될 수 있죠.

야구와 그 분석 방식은 계속해서 진화하고 있습니다.
스탯캐스트 시절 초창기엔 높은 스핀의 포심과 낮은 스핀의 싱커가 트렌드였고, 호크아이로 피치 추적이 정밀해지자 심-시프트 웨이크(seam-shifted wake)가 유행했습니다.
최근엔 어택 앵글에 대한 지표가 붐을 일으켰고요.

그리고 이제, 어쩌면 다음 흐름은 이런 유형의 투수들일지도 모릅니다.

출처:
PitcherList, Spin Doctors: A Look At The Most Versatile Pitcher Archetype (작성자: Jack Foley)
원문 링크: https://pitcherlist.com/spin-doctors-a-look-at-the-most-versatile-pitcher-archetyp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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