킥 체인지

MLB에 등장한 새 구종, ‘킥 체인지’란?

새로운 구종은 어떻게 탄생하는가?

어떤 투구가 ‘하나의 구종’으로 인정받게 되는 시점은 언제일까요? 새로운 구종이 탄생했다고 할 수 있는 기준은 무엇일까요? 그리고 그 공로는 누구에게 돌아가야 할까요?

한때 슬라이더는 존재하지 않는 구종이었습니다. 하지만 20세기 초, 찰스 벤더가 “니켈 커브(nickel-curve)”라는 투구를 반복적으로 던지며 이 구종은 점차 널리 퍼졌고, 오늘날 우리가 아는 슬라이더로 자리 잡게 되었습니다. 물론, 이 이야기는 하나의 전승일 뿐이고, 어떤 투수들은 자신이 주인공인 다른 이야기를 들려주기도 합니다.

슬라이더의 탄생 과정이 시사하는 바는 분명합니다. 피치 추적 시스템이 없던 시절, 어떤 투수가 새로운 공을 던지기 시작했고, 이후 몇몇 투수들이 이를 따라 했으며, 마침내 모두가 인정하는 이름과 형태(그리고 그립과 메커니즘까지)를 갖추게 되었을 때, 비로소 그 구종은 야구의 어휘 속에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이것은 오늘날 피치 추적 기술이 존재하고, 혁신과 반복이 끊임없이 일어나는 시대에도 여전히 유효한 이야기입니다. 특히 지금 우리가 새로운 구종의 탄생을 목격하고 있을지도 모른다는 점에서 더욱 그렇습니다.

그 주인공은 바로 ‘킥 체인지(kick-change)’입니다. 이 구종은 지금 리그 전역에서 점점 인기를 끌고 있으며, 그 성장 과정을 실시간으로 추적할 수 있을 만큼 아직 따끈따끈한 신상입니다. 그리고 어쩌면 이 구종의 확산을 지켜보는 과정이, 현대 야구에서 ‘하나의 구종’이 갖는 의미를 다시금 생각해보게 해줄지도 모릅니다.

‘킥 체인지’는 이렇게 탄생했다

새로운 구종이 한 투수의 손에서 시작된다면, ‘킥 체인지(Kick-Change)’의 탄생은 숀 앤더슨(Shaun Anderson) 덕분이라 할 수 있습니다.

메이저리그와 KBO를 오가며 활약한 베테랑 투수 앤더슨은 ‘슈피네이터(supinator)’ 계열 투수입니다. 이는 슬라이더를 던질 때 필요한 손목 회전(슈피네이션)에 익숙한 반면, 엄지 쪽으로 공을 끌어당기는 동작(프로나이션)은 상대적으로 어려워한다는 뜻입니다. 그는 오랫동안 자신에게 맞는 체인지업을 찾고 있었고, 수많은 시도 끝에 원하는 무브먼트를 만들어낼 방법을 발견했습니다.

“기존에는 중지를 공 위에 얹고 찍어 누르는 식이었는데, 이제는 손을 옆으로 돌려 실밥의 오른쪽을 찍어 누르듯 던져요,” 앤더슨은 자신의 구종을 소개한 The Sporting Tribune의 잭 제인스(Jack Janes)에게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핵심은 공의 축을 위에서 누르는 게 아니라 아예 축을 뒤집는 방식이에요. 그래서 중지를 이용해 공의 축을 ‘차듯이(kick)’ 던지는 게 킥 체인지의 목적이죠.”

하지만 이때까지만 해도, 이건 단지 한 투수의 실험에 불과했습니다. 전설적인 명예의 전당 투수 찰스 벤더처럼 역사적인 명성을 지닌 것도 아니고, 이 그립에는 아직 이름조차 없었습니다. 그러다 앤더슨이 Tread Athletics를 방문해 리프 스트롬(Leif Strom)을 만나면서, 이 구종은 진짜 ‘정체성’을 갖게 됩니다.

“‘킥 체인지’라는 이름은 리프가 붙인 거예요,” 라고 Tread Athletics의 설립자인 벤 브루스터(Ben Brewster)는 말합니다. “이게 누가 진짜로 처음 만들었는지를 말하긴 어렵죠. 리프는 이 투구에 의미를 부여하고, 체계화하고, 이름을 붙인 사람이에요.”

2023년 초, 이들은 고속 카메라를 활용해 앤더슨의 투구 동작을 분석하기 시작했고, 그 과정에서 이 독특한 구종이 어떻게 형성되는지를 하나하나 밝혀냈습니다. 스트롬이 촬영한 영상에서 볼 수 있듯, 이 투구는 일반적인 축과는 다른 방식으로 손에서 빠져나오며 빠르게 회전합니다. 바로 이 독특한 그립이 공에 예상치 못한 무브먼트를 만들어내는 비결입니다.

킥 체인지의 전파: 훈련소에서 메이저리그로

킥 체인지는 독립 투구 개발 기관인 트레드 애슬레틱스(Tread Athletics)에 도달하면서 본격적으로 퍼지기 시작했습니다. 마이너리그 선수 다니엘 블레어(Daniel Blair)는 그곳에서 훈련을 받으며 이 구종을 익혔고, 이를 2024년 스프링캠프에 가져갔습니다. 그곳에서 샌프란시스코 자이언츠의 투수 헤이든 버드송(Hayden Birdsong)이 이 투구를 보고 관심을 갖게 되었고, 직접 시도하게 됩니다. 그는 자신이 “공을 던질 때 정면으로 맞서는 편이고, 프로나이션(엄지 방향으로 손목 돌리기)이 능숙하지 않다”고 느꼈기 때문에 이 투구가 적합하다고 생각했다고 합니다. 벤 브루스터의 추정에 따르면, 버드송은 이 킥 체인지를 실제 경기에서 처음으로 사용한 메이저리거였습니다.

그 후, 자이언츠의 투수 개발 책임자였던 브라이언 배니스터(Brian Bannister)는 시카고 화이트삭스로 자리를 옮겼고, 비슷한 투구 성향을 지닌 데이비스 마틴(Davis Martin)에게 이 투구를 전수했습니다. 마틴 역시 슈피네이션(손바닥을 위로 돌리는 동작)에 강점을 가진 투수였기 때문에, 킥 체인지는 그의 손에서도 자연스럽게 자리를 잡게 되었습니다.

SNS를 타고 퍼진 킥 체인지, 그리고 무뇨스의 등장

그다음엔 SNS였다. 헤이든 버드송의 체인지업 영상이 온라인에 올라왔고, 브라이언 배니스터 역시 데이비스 마틴과 함께한 훈련 내용을 스레드 형식으로 공개했다. 하지만 구종이 SNS를 타기 시작하면 이야기는 다소 복잡해진다. 시애틀 매리너스의 안드레스 무뇨스(Andrés Muñoz)도 그렇게 이 구종을 접했지만, 정확히 누구에게서 배운 건지는 기억하지 못했다.

“인스타그램에서 봤어요,” 무뇨스는 이번 스프링캠프에서 이렇게 말했다. “프로 선수는 아니었고, 누군지 몰라요. 그냥 스크롤하다가 봤는데, ‘나도 한 번 해볼까?’ 싶어서 캐치볼할 때 던져봤죠. 그러곤 ‘오, 괜찮은데?’ 했어요.”

하지만 이 구종이 진짜로 주류 구종인 스위퍼(sweeper)나 스플링커(splinker)처럼 자리 잡기 위해선, 뚜렷한 ‘대표 주자’가 필요합니다. 찰스 벤더처럼, 혹은 요즘의 폴 스킨스처럼 말이죠. 모두가 따라 하고 싶어질 만한 스타 투수 말입니다.

그리고 올해 그 가능성을 보여주는 선수들이 있습니다. 특히 시애틀의 마무리 투수 안드레스 무뇨스가 그렇습니다. 그의 킥 체인지는 시속 91마일로 떨어지며, 타자 입장에선 공포 그 자체입니다.

메츠의 클레이 홈스, 킥 체인지를 장착하다

올해 뉴욕 메츠에서 선발 투수로 시즌을 준비한 클레이 홈스(Clay Holmes)는 이번 오프시즌 동안 트레드 애슬레틱스에서 킥 체인지를 익혔고, 그 결과물은 매우 인상적입니다.

홈스는 평소에도 투구의 미세한 움직임에 큰 흥미를 가져온 투수입니다. 메츠의 보조 투수 코치 데지 드루셸(Desi Druschel)은 홈스의 첫 선발 등판 이후 킥 체인지의 메커니즘에 대해 이렇게 설명했습니다.

“킥 동작이 일어나는 건, 에저트로닉(Edgertronic) 고속 카메라로 보면 명확해요. 공을 놓는 순간 손가락이 떨어지는데, 그때 중지가 실밥을 찍어 누르듯 튀어나가면서 회전축을 ‘킥’하듯이 바꿔버리는 거예요,” 드루셸은 말합니다. “결과적으로 공의 스핀 축이 바뀌고, 바로 그 지점이 ‘킥’이라는 개념이 나오는 부분이죠. 이건 스위퍼와 비슷한 원리예요.”

“스위퍼도 손가락이 축을 바꾸긴 해요. 다만 그건 더 전통적인 방식이죠. 킥 체인지는 그와는 다르게 공의 축을 의도적으로 바꾸는 투구예요. 일반적인 체인지업은 손가락을 따라 미끄러지듯 굴러 나가는데, 킥 체인지는 정확히 말하자면 손가락으로 회전축을 바꾸는 투구라고 할 수 있죠.”

킥 체인지의 확산

트레드 애슬레틱스를 중심으로 형성된 ‘진원지’와 좋은 체인지업을 찾기 위해 고심하던 투수들의 수요가 맞물리면서, 킥 체인지는 놀라운 속도로 퍼져가고 있습니다. 지금까지 버드송, 데이비스, 무뇨스, 홈스가 이 구종을 던지는 모습이 확인되었지만, 실제로는 우리가 미처 몰랐던 투수들까지 킥 체인지를 사용하고 있습니다.

LA 다저스의 랜던 낵(Landon Knack)는 일본 경기에서 킥 체인지를 던졌고, 텍사스 레인저스의 우완 잭 라이더(Jack Leiter)는 트레드에서 훈련한 우완 맷 페스타(Matt Festa)에게 이 구종을 배웠다고 밝혔습니다. 볼티모어 오리올스의 좌완 케이드 포비치(Cade Povich)도 킥 체인지를 던지고 있고, 복귀를 준비 중인 랜디 도브낙(Randy Dobnak) 역시 이 구종을 장착했습니다.

이 투구는 과거 우리가 봐왔던 너클 체인지, 예를 들어 맷 라토스의 ‘크리터(Critter)’와는 다른 성격이지만, 독특한 체인지업 그립이라는 계보에는 확실히 속합니다. 그리고 현대의 기술 덕분에, 우리는 이 새로운 체인지업을 기존의 다양한 변화구들과 보다 명확하게 구분할 수 있게 되었습니다.

“킥 체인지는 꽤 ‘새로운’ 구종이라 볼 수 있어요,” 메츠의 보조 투수 코치 드루셸은 말합니다. “누군가는 과거에 이런 식으로 던졌을 수도 있겠죠. 하지만 지금 우리가 말하는 형태는 좀 더 새로운 것처럼 보여요. 그렇다고 해서 완전히 전례 없는 무언가라고 말하긴 어렵죠. 사실 오늘날 우리가 시도하는 것들 대부분은, 예전에도 누군가는 해봤지만 지금처럼 명확히 설명하거나 측정할 수 없었던 것뿐이에요.”

“예를 들어 ‘심 쉬프티드 웨이크(Seam-Shifted Wake)’ 현상도 최고의 투수들은 이미 본능적으로 활용하고 있었을 겁니다. 단지 우리가 그걸 과학적으로 측정하고 정의할 수 없었을 뿐이죠. 이제는 기술이 좋아져서, 그 현상들을 훨씬 정확히 파악하고 설명할 수 있게 된 거예요.”

킥 체인지는 과연 ‘신규 구종’이 될 수 있을까?

현재까지 알려진 킥 체인지 데이터를 모두 모아 분석해보면, 이 구종이 고유의 ‘무브먼트 형태’를 가지고 있는지를 가늠할 수 있습니다.

구종수직 움직임 (in)수평 움직임 (in)평균 구속 (mph)whiff%
킥 체인지13289.618.6%
체인지업15585.740.5%
스플리터11386.421.4%

텍사스 레인저스의 잭 라이더(Jack Leiter)는 이렇게 말합니다.
“지금 이 구종은 스플리터처럼 움직여요. 좌우 무브먼트는 없고 그냥 아래로 툭 떨어집니다.”

시애틀의 무뇨스도 비슷하게 말했죠.
“옆으로보다 아래로 떨어지는 움직임이 더 강하죠.”

하지만 모든 투수가 같은 무브먼트를 구현하는 건 아닙니다. 시카고 컵스의 제임슨 타이욘(Jameson Taillon)은 자신이 던지는 킥 체인지 중 가장 좋은 구질들은 수평 무브먼트가 더 크게 나타난다고 합니다. 그는 이렇게 덧붙였습니다.
“이 구종은 정말 사람마다 너무 다르게 나와요.”

사실, 스위퍼도 마찬가지입니다. 모든 스위퍼가 동일한 형태를 보이는 건 아니고, 투수마다 메커니즘도 조금씩 다르죠.

잭 라이더, 제임슨 타이욘, 안드레스 무뇨스가 사용하는 킥 체인지 그립만 봐도, 각자의 스타일과 손에 맞게 조금씩 다르게 적용되고 있음을 알 수 있습니다.

킥 체인지 그립
잭 라이터, 제임슨 타이욘, 안드레스 무뇨스의 킥체인지 그립(Eno Sarris / The Athletic)

그렇다면 킥 체인지는 진짜로 ‘공식 구종’으로 분류될 수 있을까요?

메이저리그는 2022-23 오프시즌 동안 스위퍼(Sweeper)를 슬라이더와 별도로 분류하기로 결정했습니다. 당시 MLB 관계자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스위퍼는 점점 더 널리 사용되기 시작했고, 투수와 코치들도 이 용어를 일반적으로 쓰기 시작했죠. 기존 슬라이더 범주에 묶어두기엔 무브먼트 특성이 너무 달랐습니다. 특히 클레이 홈스처럼 두 구종을 모두 던지는 투수의 경우, 평균 수치가 왜곡되며 분석에도 문제가 생겼어요. 그래서 스위퍼를 별도 구종으로 등록하기로 했습니다.”

이러한 이유로, 킥 체인지가 ‘완전히 새로운 구종’이 아닌 ‘변형된 체인지업의 하위 유형(sub-class)’으로 남을 가능성도 있습니다. 만약 투수가 체인지업으로 킥 체인지만 던진다면, 포수는 그냥 체인지업 사인을 내고 그대로 받아들이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다시 생각해보면, 슬라이더가 처음 등장했을 때도, 스위퍼가 등장했을 때도 지금과 비슷한 조건들이 있었습니다. 트레드 애슬레틱스라는 중심지가 있었고, 확산을 위한 기회가 있었으며, 무브먼트 데이터로 그 구종의 정체성을 구분할 수 있는 기술적 기반도 있었습니다.

킥 체인지는 이미 브레이킹볼은 잘 던지지만 체인지업 그립에 어려움을 겪는 투수들에게 매력적인 대안으로 떠오르고 있습니다. 만약 이들 중 한 명이 올해 대성공을 거두고, 그 원동력으로 킥 체인지를 지목한다면? 이 구종은 더 널리 퍼질 것이고, 언젠가는 Statcast 페이지에 별도 구종으로 등록되거나, 경기 중계에서 자주 언급되는 날이 올지도 모릅니다.

어쩌면 킥 체인지에도 찰스 벤더 같은 ‘전설’이 필요할지 모릅니다. 모두가 기억하고 따라 하게 될 그 투수 말이죠.

출처:
The Athletic, The birth of a new pitch: Why MLB players are rushing to try the ‘kick-change’ (작성자: Eno Sarris)
원문 링크: https://www.nytimes.com/athletic/6201935/2025/04/02/new-baseball-pitch-kick-change-origin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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